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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



단정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제목.

과연 세상의 모든 의사들이 수술 받지 않을까?


책 내용은 도발적이지 않다.

병과 의사, 병원이라는 소재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글쓴이의 이력을 보다 보니 참 독특하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활동도 하고, 편안하게(!) 의대 교수를 해도 될텐데, 인도의 고대의학인 아유르베다를 공부하고, 글로벌 제약사에 근무하기도 하고, 의료의 진정성과 건전성 회복을 위한 비영리 단체 '포럼제로 Forum Zero'를 경성하여 활동중이니, 글쓴이의 이력에서 공통점은 '의사" 뿐 인듯하다.


글쓴이의 글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쉽게 읽을 만하다. 게다가 인용되는 글귀나 책들이 오랜 기간 독서를 해왔다는 느낌을 준다. 책 중간에는 "공산당 선언"마저 패러디 한다. 뭐니뭐니 해도 의료와 사회 의료 체계를 이야기하면서도 딱딱하지가 않다는 점이 좋다.


글쓴이는 불안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글쓴이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온갖 '불안'의 이념이 판치고 있다. '불안'은 '사적인 ' 보험과 일상에서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노후에 대한 압박과 아이들에 대한 '사교육'의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불안을 이겨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잘 갖춰 입을 수 있는 '갑옷'으로 '소신'을 이야기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불안'이란 것은 포식자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냄새 나는 표적이고 기름진 먹잇감이다. 불안을 이용해서 선겅서 승리하고, 불안을 이용해서 보험에 들게 하고, 불안을 이용해서 충성을 강요하고, 불안을 이용해서 실적을 압박하고, 불안을 이용해서 물건을 판다. 철학이 없는 사람들은 삶의 방향과 이유를 잃고 불안에 쉽게 휩쓸린다.

- 95쪽


인터넷이 눈이 부시게 발전해서 누구나 마음맘 먹으면 의학박사보다 더 많은 의료 지식을 이야기하는 세상이다. 지식인에 물어보면 온갖가지 답변들이 따라 붙는 세상이다. 약장사, 병원 장사, 보조기계 장사 등등이 사람들의 불안을 백과사전처럼 해결해주는 세상인데, 글쓴이는 예민하지만 수동적이고 취약한 사람들로 바라본다.


일단 어디가 조금만 이상해도 벌벌 떤다. 온갖 불길한 상상을 다 한다. 그리고는, 소문에 용하다는 병원을 여기저기 찾아 다니며 반복된 검사와 치료에 자신의 몸을 수동적으로 내맡긴다. 지나치게 예민한데 의외로 수동적이고 결과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다.

- 44쪽


'받아들임'이란 포기와는 다르다. '받아들임'이란 자신의 상태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고 인정하고 결의하는 것이다. 병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 된다.

- 45쪽


글쓴이는 치료란 아픈 사람의 몸이 낫게 도와 것이라고 강조한다. 세상에 한 방에 해결해주는 은총알은 없는 셈이다.


저절로 낫게 해주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낫는 것은 내 몸 스스로의 힘뿐이다. 약도 수술도 물리치료도 깁스도 아니다. ... 다만, 내 몸의 세포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평소 영양상태가 좋고 체력을 잘 관리해온 사람은 병에 걸리거나 수술을 받은 후에도 회복이 잘 된다. 결국 낫는 일은 나 하기에 달렸다.

- 49쪽


그래도 우리는 기적 같은 치료를 원한다. 우리 몸을 나쁜 환경과 음식에 내몰고 혹사시키고, 기적같은 의학이 주사 한방으로 약 한 알로 치료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나 보다. 우리 몸은 본디 자연치유력을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를 건강하게 만들지 않고 자신을 믿지도 않는 상황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가 없다"

"시간이 나기를 기다려서는 운동을 못해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해야 합니다."

- 51쪽


"엑스레이를 들여다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

'나는 네가 95년도에 먹은 핏자를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요기 옆구리에 지방이 되어 붙어 있구나.'

- 52 ~ 53쪽


보통 사람들은 뼈가 부러진 상황은 엑스레이로 쉽게 알 수 있지만, 엑스레이를 들여다 봐도 도대체 어디가 안좋은지 알수는 없다. 글쓴이의 표현은 전문가로서 적절하고 재밌는 표현이다. 옆구리에 지방이 언젠가 먹은 피자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먹은 것으로 만들어져간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글쓴이는 7가지 현상으로 문제점을 진단하고 각각에 맞게 7개의 해법을 제시한다.

현상 1.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해법1. 마음의 힘을 키운다
현상 2. 땀을 흘려 본 게 언제더라 ...  해법2. 몸을 많이 움직인다
현상 3. 사이보그라도 괜찮아  해법3. 인공에 반대한다
현상 4. 사람들은 왜 병원에 가는가?  해법4. 경증에 지혜롭게 대처한다
현상 5. 미니스커트 길이보다 더 민감하고 변덕스러운 것  해법5.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
현상 6. 꽁돈의 사회학  해법6. 보험을 남용하지 않는다
현상 7. 가장 힘든 것은 내가 내 자신의 노예 감독일 때다  해법7. 느리게 산다

- 99쪽


이 해법대로라면 의사가 필요없는 존재가 되버리고 만다. 그래서 글쓴이는 '0차 의료 해법'을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1차 - 2차 - 3차 의료 체계로 되어 있는데, 그에 앞서 '0차 의료 체계'를 갖추자는 뜻이다.


'영(0)차 의료 해법'은 사람을 되찾자는 뜻을 담고 있다. 자본 너머에 간직된 인적 요소, 그 중에서도 환자들 자신의 힘과 역할을 찾고 키우자는 것이다. 즉, 여기서 '0차'란 읠기관을 찾기 전 순서상 영 순위, 우리들 자신을 가리킨다. 인류 출현과 함께 언제나 존재해왔고 평소 부지불식 중에 우리가 하고 있는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건강행동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화하고 강화하자는 것이다.

- 98쪽


끝으로 마지막 7번째 해법인 "느리게 살기"가 맘에 든다.

느리게 살아보려 하지만, 잘 안된다. 느리게 산다는 것, 무지 힘들다.

글쓴이가 이야기하는 느리게 산다는 것.


놀랍게도 난 이 일이 귀찮은 게 아니라 즐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혀 즉각이지 않다. 미리 준비한다. 여유롭다. 밥 짓는 시간에 맞춰 다른 생활의 리듬도 천천히 돌아간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긴 호흡 긴 리듬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그만큼 더 부지런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역설적이게도 두 배 느리게 사는 방식을 택한다면, 실은 두 배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건강해지는 삶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밀도 높게 몰입하는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데에는 '친환경'인 삶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 154 ~ 155


느리게 산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밥도 해야하고, 도시락 싸들고 다녀야 하고, 카톡 메시지에서 소외되고, 지하철을 타면 멍 때려야 하고, 더구나 가족에게서 버림 받을 수도 있다. 글쓴이 말처럼 두 배 더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일까?


책의 끝 부분에 삶, 여유 등에 대해서 감동적인 문구가 있다. 평소에 나도 자주 하는 말인데, 글쓴이 글귀가 더 좋다.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생존이 아니라 삶이다.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는 저절로 주어지는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생기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려서는 진정 원하는 것을 영영 못한다. 다른 것 접고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야 그것을 할 수 있다.

- 157쪽



글쓴이 강연회 소개


글쓴이 김현정님께서 강연회를 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메일을 받는 시점과 도서관에 책을 신청한 시점이 비슷하다. 글쓴이와 강연자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같은 분이다. 꼭 가봐야지 하는 생각과, 어렵게 준비하고 있는 내 삶의 여유를 위해서 여행을 떠나기로 한 시간이 겹친다. 고민된다.


강연회는 나눔문화에서 열리는 평화나눔아카데미에서 4월 25일 열린다. "인간의 조건"의 집이 있는 부암동 골짜기에 이쁘게 자리 잡은 곳이고, 저녁으로 나오는 소박한 밥상은 느림의 맛이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나눔문화 평화나눔아카데미 http://www.nanum.com/site/with_academy_1/485777 에 접속해보시면 글쓴이의 반가운 얼굴과 강연회에 대한 안내를 볼 수 있다. 강연은 공짜가 아니고 참가비를 내야 합니다.





아래는 좋은 글귀들



이상하게도,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의사들은 의료소비에 있어서 일반인들과 다른 선택을 보인다. 예를 들면, 건강검진 받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인공관절이나 척추, 백내장, 스텐트, 임플란트 등등 그 흔한 수술 받는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심지어 항암치료 참여율도 떨어진다. 요컨대 검사도 덜 받고, 수술도 덜받고, 몸을 사린다.

- 12쪽


왜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들에게 권유하는 처방을 자신을 위해서는 선택하지 않을까?

첫 번째 이유는 '잘 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기다리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들은 자기자신이 비로소 되어서야 이런 부담에서 훨훨 벗어나 가장 솔직한 선택을 할 수 잇는 자유에 놓인다. 그들은 보수적이고 conservative, 보존적이고 preservative, 최소한의 minimal 의료를 신속하고 조용하게 선택한다.

- 12 ~ 14쪽


현대의학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비약적인 성과를 이루어왔다. ... 하지만 그 결과 사람들은 더 건강해졌는가? 인류의 삶은 더 바람직해졌는가? 선뜻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질볍이 등장한다. ... 하지만, 그냥 직관적으로 판단해보자. 과연 그런가? ..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진다.

- 15  ~ 16쪽


산발적인 증례들은 처음에 제각각 유일하고 일회적 진실인 듯 보였다. 하지만, 일상에서 촘촘히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어떤 패턴을 싸늘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실체는 '불안'이었다. 저마다의 심연에 바오밥 뿌리처럼 자리잡은 불안은 우리를 아우성치게 만들기도 하고 침울하게 만들기도 하고 여기 저시 쑤시고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검사를 받게 만들기도 하고 겁없이 큰 수술을 덜컥 받게도 만든다. 불안은 어느새 우리들 사이를 돌고 돌며 또 서로 주고 받으며 전염병 병균처럼 도처에 만연해 있다.

- 19 쪽


한 덩치 한다. 하루는 그의 건강이 걱정이 되어, 검진을 한번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물어 보았다.

- 싫어, 난 아픈데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아.

- 그래도 검사하면 뭔가 이상이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 나오면 어쩔 건대?

- ....

- 19쪽


불안이 장려되는 사회에서 가장 정당한 갑옷은 '소신'이다.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잘 갖춰 입을 수 있다.


변하는 것

1) 병이 병한다

2) 환경과 생활 양식이 변한다

3) 의료기술과 치료제가 변한다

4) 사회제도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

1) 우리의 행동양식은 변하지 않는다

2) 우리의 몸은 변하지 않는다

3) 의업의 개별성은 변하지 않았다



의사들은 왜 자꾸 약을 처방하는가?

첫째, 달라니까 준다.

둘째,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셋째, 일단 약을 주면 짧은 시간에 많은 수의 환자를 흡족하게 만들 수 있다.

넷째, 안 주면 불안하다.

다섯째, 절박하다.

여섰재, 약을 주는 것은 당위다.


그럼, 환자들은 왜 약을 원하는가?

첫째, 주니까 먹는다.

둘째,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셋째, 일단 받아다 놓으면 먹고 말고는 본인이 알아서 할 수 있다.

넷째, 안 먹으면 불안하다.

다섯째, 절박하다.

여섯째, 약을 받는 것은 당위다.


이렇듯 운동이 명약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실제에서 현대인은 운동량의 절대적 결핍 속에 살고 있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야 할지, 혹은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는 수가 많다.

- 116쪽


슘페터의 저주


기술 혁신이란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이런 기술 혁신이야말로 기업가 정신의 원동력이다 - 슘페터


이것은 슘페터의 저주다. 어떤 경제 모델이든 혁신을 하면 할수록 더 빨리 한계에 이르게 된다. - 고든 레어드 <가격 파괴의 혁명> 2005

- 1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