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인문학
교양 있는 아이로 키우는 2,500년 전통의 고전공부법
리 보틴스 지음, 김영선 옮김, 유유
한 마디로 "부모인문학"을 표현하자면 "공부에 관한 최고의 책"이다.
이보다 공부에 관해 좋은 책은 본 적이 없다.
최근에 "공부를 공부하라"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책도 좋지만 "공부"보다는 "시험"과 "성적"에 치우친 책이어서 아쉬웠다.
나는 "참교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라는 민주화가 시작되는 시점의 세대다. 그래서인지 억압이나 학교, 교육이라는 말에 두드러기가 난다. 아이들의 창의성, 자율성, 즐거움이 교육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2-3년 사이에 생각이 바뀌고 있다. 생각이 바뀌는 바탕에는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여러 분야를 열심히 살펴보았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공부"라는 말을 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공부"는 "학교에서 시험 성적을 잘 받는다"라는 의미가 절대적이다.
글쓴이는 고전공부를 아래와 같이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고전공부는 문법, 논리학(변증법), 수사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트리비움'trivium(3학과)이라 불렸는데, '세 가지 길' 또는 '세 길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
고전공부의 기본은 부모가 아이에게 암기법과 문법을 가르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일부 교육자는 기계적인 암기의 필요성을 묵살하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암기는 우리의 뇌가 정보를 간직하도록 훈련시키기 때문에 매우 유익한 학습 방식이다. 또한 그것은 인류가 일찍이 고안한 가장 자연스러운 교육 방식으로, 부모가 아이와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 31쪽
특히 문법은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 책에서는 공부의 첫번째 단계를 "문법"이라고 표현한다. 규칙을 이루고
있는 원칙이라 할 수 있겠다. 규칙을 알지 못하거나 암송하지 못한다면 공부는 늘지 않는다. 예로, 수학의 경우 구구단을 2단에서
9단까지 24초, 9단에 2단까지 거꾸러 24초만에 외울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갈 때는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 문법을 익혀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독특한 "생각"만을 강조하고, 기계가 도와주는
학습 방법을 찾으면서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한다.
공부의 본질은 온고지신(溫故之新)이다.
공부를 잘 하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수단이 시험이고, 시험의 결과가 성적이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꼭 공부를 할 필요는 없다. 학습을 해도 된다. 학습을 통해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공부를 잘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인터넷 책방에 나온 "부모인문학"의 소개에 대한 글에 불만이다. 이 책의 진가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이 책을 쓴 "리 보틴스"는 아들 네명을 모두 우리에게는 낯선 홈스쿨링을 통해서 교육을 시켰다.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네 명을 가르쳤으며,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연구하고, 같은 "고전공부법"을 이용하는 학부모, 연구자들과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 받았다. 이 책은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좀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좀 더 좋은 대학에 보내 좋은 직장을 취업하라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거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그 한 극단에는 "특목고"가 있고, 반대편 극단에는 "대안학교"가 있다. 특목고는 효율을 중시하고 대안학교는 효과를 중시한다. 그러나 둘은 본질은 같고 현상이 반대인 하나의 모습이다. 두 극단에서 모두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없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전 국토를 뒤엎을 정도로 보급되면서 아이들은 공부하지 않고 검색을 한다. 학교에서 열심히 외우지 않고, 다양한 인강을 선택하여 시험에 나오는 핵심만을 빠른 속도로 돌려본다. 20-30년 전만 해도 수학은 정석, 영어는 성문이라는 독보적인 교재로 공부했다. 책이 너널너널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볼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처럼 공부를 못한다거나 학업능력이 떨어진다고 사회가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넘쳐나는 교재들을 던져주고 "공부"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전에 뉴스에서는 교육 과정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게 가르치겠다는 끔직한 기사를 보았다. 그렇게 하면 창의적인 창조경제를 만들 수 있겠다는 발상인가 보다. 찰스 펫졸드라는 유명한 프로그래머가 쓴 "CODE 코드"라는 책을 보면 첫장에서 친구와 대화하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해서 모스부호로 또 점자와 이진 부호와의 관계로 컴퓨터에서 부호가 어떤 의미인지로 시작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부호를 통해서 논리와 스위치, 게이트, 메모리, 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직접 개발 가능한 언어를 배워야만 프로그래밍을 잘 하고, 창조적인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란 무엇인지, 또 구조는 무엇인지, 동작 원리는 무엇인지, 사람의 뜻을 컴퓨터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으며, 제약점은 무엇인지 등등을 알아야 좋은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모든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르는 셈이다.
"부모인문학"에서는 책의 내용을 맛보기하는게 좋지 않을 듯 하다. 이 책은 뒤돌아보고 그때 그때 뒤돌아봐야 할 책이다.
"부모인문학"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글쓴이가 미국인이다 보니 미국 또는 서양 중심적인 것이 많다. 이 책에서는 라틴어를 공부하는 대목이 있는데, 옮긴이 글이나 해제를 통해서 동양에서는 한문의 중요성에 설명을 해줬으면 좋았을 뻔했다. 다른 책들은 불필요한 해제가 정신 사납게 하는데, 이 책은 해제나 우리 풍토에 맞는 길잡이가 없어서 아쉽다.
개정판에서는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만 소개한다. 글쓴이가 2주동안 자메이카에서 아이들이 칠판의 성서 구절을 베껴 쓰기하는 것을 보면서 깨달은 내용이다.
... 그 아이들은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었고,
어려운 단어도 읽을 수 있었으며,
[성서]의 많은 구절을 암기했고,
칠판을 올려다보고 거기 적힌 구절을 종이에 옮겨 쓸 수 있을 만큼 소근육이 발달돼
있었으며,
오랫동안 연필을 바르게 잡고 글씨를 쓸 수 있는 손힘을 가졌고,
아름다운 필체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것들이 아주 많은 상황에서, 이런 베껴쓰기는 '바쁘기만 하고 별로 쓸모는 없는 일'로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자메이카 학교에서 2주를 보내고 나니, 나는 그들의 방식이 오히려 효과적이고 내가 가르쳐온 방식이야말로 '시간만 허비할 뿐 별로 쓸모없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다른 교육자들이 고전공부법을 언급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에, 그 후 나는 그들의 방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들과 같은 성과를 얻고자 노력했다. 자메이카의 학교에서 본 것은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교수 방식이었지만 나에게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오늘날 학교는 기본이 되는 사소한 문제들을 지나치게 가벼이 여긴다.
- 157 ~ 158쪽
'책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멍 때려라 (1) | 2013.06.15 |
---|---|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0) | 2013.05.13 |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0) | 2013.04.19 |
정보정리의 기술 (0) | 2013.04.18 |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0) | 2013.04.16 |